所以我去您看过的湖海
望您眺过的天空
走您迈过路途
谨以此文献给挚爱之人先行天国伤痛未愈的每一位。
本文译自 장영희作者《20년 늦은 편지》一文
백조 10, 충남 천안 공원묘지
지구, 대한민국,우주
사랑하는 아버지께
마치 온 하늘이 조각조각 무너져 내리듯 끝없이 눈이 내리더니, 이제는 투명한 햇살 속에세 찰스 강변의 수선화들이 노란 봉오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 27년 전 아버지께서 이곳에 머무르면서 쓰신 책의 제목과 같이 '찰스 강의 철새들' 중의 하나가 되어 보스턴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시던 엘머 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작은 아파트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天鹅10,忠南天安公园墓地
地球,韩国,宇宙
致我敬爱的父亲
刚刚雪还不停在下呢,像天空一块块塌下来似的,不过现在呀这查尔斯湖边的水仙花们正从透明的阳光里纷纷探出嫩黄的花蕊来。爸,我现在就如您27年前在这儿小住时写的书《查尔斯湖的候鸟》一样,又回到了波士顿。在离您当时所住埃尔默的家不远的一个小公寓楼里写着这封信。
기억하시는지요. 1980년 겨울, 제가 유학 시절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라는 글을 <코리아타임즈>에 기고한 적이 있지요. 그랬더니 며칠 후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셔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언제 나오냐?" 하셨던 거요. "네 편지 잘 받았다" 하고 전화해 주실 아버지는 한국에도 이곳에도 안 계시지만, 제가 게으름 피우거나 포기하려 할 때마다 "안 하는 것보다 늦게라도 하는 게 낫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며 20년 늦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还记得吗。1980年的秋天,我在留学的时候写了篇《给母亲的信》投稿给《韩国时代》。没过几天您就给我来电话了,半真半假地说 ”《给父亲的信》什么时候写好呀?“。虽然能回答我 ”嗯,你的信我收到了“ 的您已经不在韩国也不在这儿了,但我每次想偷偷懒或者放弃的时候总想到您以前说的 “迟做总比不做强“ 我就提起笔给您写这封信了。
아버지가 떠나신 지 6년이 되었습니다. 길다고 하면 긴 세월, 이제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1주기 미사를 하면서 키스터 신부님이 강론 중에 해주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爸,你走了6年了。说短也不短的6年,现在看到您的照片终于也能不流泪了。我突然想到基斯特神父在您一周年弥撒时说的话。
"이제는 보내 드리십시오. 사랑의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고, 문을 닫으십시오. 아버님은 지금 천국에서 행복하십니다."
“现在该送他走了。闭上双眼,将爱留在回忆中。他在天国非常非常得幸福。”
그때 저는 신부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위로를 해주시기는커녕 어떻게 아버지를 보내 드리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사랑의 기억을 어떻게 철 지난 옷 차곡차곡 챙겨 넣고 서랍장 닫아 버리듯 할 수 있나요?
那时候我觉得神父太莫名其妙了。别说安慰了,怎么连送走您这样的话都说得出来?关于爱的一点一滴怎么可能时间一到就像衣服一样整整齐齐地码在抽屉柜里?
그렇지만 아버지, 이제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니, 저는 그분의 말뜻을 이해할 듯합니다. 보내 드리라는 말씀은 물론 잊으라는 말씀이 아니지요. 육체적 존재에 연연하지 말고 미약한 인간적 개념의 시간을 넘어서서 더욱 깊게, 영혼의 힘으로 기억하라는 말씀이지요.
但时间慢慢过去吧,我好像能理解他这句话了。送您走绝不是说让我们忘了您。虽然肉体不能永生,但随着人类这渺小时间的流逝,您灵魂的力量却能给我们更深切的回忆。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이별할 때 그 아픔은 표현할 길이 없지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어쩌면 그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언젠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입니다.
虽然这阴阳两隔的痛楚无法言喻,但如果非要说个安慰话,反正这离别也不是永远的离别,总能在更好的世界再次遇见的。
몇 년 전 여름에 LA의 언니네 집에 들렀을 때 우찬이와 함께 어떤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목도 잘 생각이 안 나지만, 그중에 한마디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살림도 어려운 미혼모 조디 포스터가 일곱 살 난 천재 아들의 장래를 위해 양육권을 포기하고 아이를 먼 곳에 있는 영재 학교로 보내게 됩니다. 어쩌면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아들을 보내며 그녀는 평상시에 하룻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아들에게 하듯 "그래, 내일 보자 (See you tomorrow)"라고 말합니다. 아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였겠지요.
几年前夏天,我去了姐姐洛杉矶的家,和宇赞一起看了部电影。电影名字虽然记不太清了,但有句台词让我印象深刻。一位没受过什么教育的未婚母亲乔迪·波斯特有个七岁的天才儿子,为儿子的将来考虑,乔迪放弃了他的抚养权,把他送到一个很远的英才学校去。虽然以后可能再也见不到了,但乔迪还是像平时儿子去朋友家玩一样,说着 “去吧,明天见啦”。我想她大概是想独自承担这离别的痛苦吧。
그 후 LA에 들렀다 한국에 돌아갈 때마나 우찬이는 내년에 보자는 말대신에 "이모, 내일 봐"라고 말하곤 합니다. '내일'과 같이 짧은 시간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면 헤어지는 마음이 덜 아쉽겠지요.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겁 속에서 하루는, 1년은, 아니 한 사람의 생애는 너무나 짧은데, 그럼에도 우리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내일 봐요"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인지요.
这之后每次回韩国之前顺便去洛杉矶看看的时候,宇赞不和我说“明年见”,总是说”姨妈,明天见啦“。如果在”明天“这样短时间里又能再见的话,或许分开就不会那么难过了。生与死这无尽的永劫里,一天,一年,甚至一个人的一生都是极短极短的,虽说如此,我们还是很难和先走的人轻松说出明天见吧。
아버지가 계시는 천안 공원묘지 입구에는 아주 커다란 바윗돌에 '나 그대 믿고 떠나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 어디서 나온 인용인지도 알 수 없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커다란 검정색 붓글씨체로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처음에는 좀 촌스럽고 투박한 말 같았는데, 어느 날 문득 그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您所在的这天安公园墓地的入口有个巨大的大理石,上面写着 “要相信我,走吧”。这句话不知道是谁说的,也不知道是哪儿引用来的,就这么没头没尾的,巨大的几个黑色毛笔字。一开始我觉得这既土气又带着点淳朴的味道,不知哪天蓦然感觉这句话好像触到我心里了。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 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没错,是这样的。重要的是信任。你们在这世上画完句号离开的时候,就是对我们的一种信任。爱不尽的由我们来爱,真实而饱含勇气的人生由我们来继续,互相的理解与包容由我们来畅怀,相信我们直到离开这世界为止不虚度珍贵的每一分一秒——不辜负,是我们该做的。
아버지, 이곳에 오고 나서 얼마 후에 거버 박사에게 전화를 했지요. 1950년대에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아버지를 가르치셨고 퇴임 후 1980년대에는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저를 가르치신 선생님 말이에요. 올해 91세이신데 아직도 정정하시지만 가끔 건망증이 심하세요. 이번에 전화를 드리니까 아주 반색을 하시면서, "아, 왕록아 오랜만이로구나. 그런데, 영희는 죽었지?" 하시더라고요. 제가 "선생님, 이름을 바꿔 기억하시네요"하고 말씀드리니까 거버 박사가 "참, 그렇지. 미안하다. 너희 둘은 모습도 말하는 것도 너무 닮아서 말이야" 하셨어요.
爸,来这儿不久后我给格勃博士打了个电话。就是五十年代在艾奥瓦州立大学教过您,退休后又在八十年代当了纽约州立大学名誉教授教了我的那位老师。他今年已经91岁高寿了,但身体还是相当硬朗,就是有的时候健忘症有点儿严重。这次我给他打电话的时候,他听上去特别开心, “哎呀,王录啊,好久没联系了。话说英姬呢,是不是死了?”。我说“老师啊,你把名字给记岔了。” “诶,好像是呢,不好意思。你们俩长得也像,说话也是像。”博士说道。
모습과 말하는 것은 닮은꼴이지만 아버지의 재능, 부지런함, 명민함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저는 아버지가 하신 일, 아버지가 하고 싶으셨던 일까지 모두 닮고 싶어 아버지가 보셨던 것과 똑같은 강, 똑같은 하늘, 똑같은 길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는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지요. 떠난 사람의 믿은 속에서,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삶과 죽음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虽然我和爸您长相和说话方式的确挺像的,但要说起才能,勤奋,聪敏,我可是没能全继承到,远远不及您啊。您的事业,您的远见卓识都是我所仰慕的,所以我去您看过的湖海,望您眺过的天空,走您迈过路途。英国作家塞缪尔·巴特勒说过一句话,“无法忘却的人便是活着的人”。因为在离别者的信任中,这种生与死的相联是永恒的。
다시 뵐 때까지 아버지의 믿음을 기억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그리고 용기 있게 살아가겠습니다.
내일 뵈어요, 아버지.
보스턴에서 둘째 딸 영희 드림
이 글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모든 분들께 드립니다.
爸,在我们下次见面前,我会好好担着你的信任,诚实地勤勉地无所畏惧地生活下去。
爸,明天见啦。
于波士顿,二女儿英姬敬上
谨以此文献给挚爱之人先行天国伤痛未愈的每一位。
译者感想:
原作者这篇文章写得非常动人,用词朴实却句句能走到心里。
第一遍看得懂,但没法一句句解释,本文用了相当多的意译。
总共看了不下十遍,总算能悟到几分作者的意境了。相信以后再看,还能翻得更好吧。
本文译自韩国作者 장영희(汉字:张英姬)的散文作品《20년 늦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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